2009년 11월 04일
TV로 이어진 밤부터 아침까지
PM 8~9.
유치원에 다닐 시절만 해도.. 이 즈음에는 쏟아지는 잠에 모가지가 꺾인채로, 마치 청소기에 먼지가 흡수되듯이 스르륵 제방으로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래도 K본부에서 하는 다큐멘터리를 놓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그때가 밤 10시...
그렇게 말했는데도 결국 조금은 늦게 깨워주시는 부모님과 함께 본 그 화면은 사람이 물레에서 도자기를 만지는 모습에 마라톤을 하는 남자의 모습이 오버랩된 오프닝 화면이 무척이나 인상깊었습니다.
PM 10.
국민학교(제맘대로 쓸랍니다)에 들어가 머리도 커지고 먹는것도 많아지고 성적표가 무섭다는 걸 알게 된 나이.
밤 10시에 M본부에서 하는 주말의 명화를 반드시 보고 잤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건 사실 '봤다'기보다는 온가족이 거실벽에 기댄 채 큰이불 두개를 나눠덮고 TV보다가, 무서운 장면 나오면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야한장면 나오면 다들 숨을 죽이고, 재미없으면 어머니의 명령으로 둘 중 하나가 TV까지 진격해 채널을 돌려야 했던... (리모컨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채널을 돌리다 보면 KBS 제 3TV였던 EBS에서는 한참 제3 외국어방송을 하고 있어서, 저 시간에 저런걸 공부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하고 궁금해했던 시절이지요.
PM 11.
이 시간은 인터넷이 상용화 되기 전까지는 전설의 고향이라던가, 독서프로, 뉴스센터 등의 프로그램이 주로 지배했던 시간이지요.
24시간 편의점이 등장한게 80년대 후반이니까... 우후죽순처럼 생긴 편의점 불빛만 간간히 보였었습니다.
별을 보고 싶으면 10시쯤에 나가서 이 시간에 들어왔던 걸로 기억하네요...
아무래도 어리다보니 밤잠이 많았고, 그래도 부득부득 보겠다고 쌓인 만화책으로 정신을 향유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부모님 몰래...
정말 좋아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영화도 M본부에서 이시간에 틀어줬었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건 패딩턴발 4시 50분.
PM 12 = AM 00.
without 컴퓨터.
아직도 좋아하는 게 잠옷만 입고 추운 거실에 나와 밤늦게 TV를 보는 것인데, 이때 중요한 건 아무도 없어야 합니다.
저 버릇이 생기게 된 연유...
고등학교.. 어쨋든 이 시기였을거에요.
TV에서 밤늦게 안데스 지방의 삶과 농민들에 대한 다큐를 해줬는데 내용중에 감자로 만든 술과 맵디 매운 요리도 나왔었고, 감자 밟기를 하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내용이 있었지요.
척박하지만 결고운 초원의 밭에서 춤추는 인디오, 그리고 그들을 덮은 푸른 하늘이 와이드 앵글로 엔딩을 장식했는데...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막판의 그 각도와 색감이 너무 좋아서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이걸 봤던 시기가 초겨울 무렵 밤 12시를 약간 넘어서였지요.
가족들은 방에서 크아크아 자대던 밤중에 혼자 눈 똥그랗게 뜨고 찬기가 싸아한 거실에서 봤던 그 시간은 사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제게 '다큐 전용'시간이었습니다.
그때 방송사에서는 이 즈음에 다큐를 좀 틀어줬었지요..
AM 01.
9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일부 문화계 프로그램들이 이시간대에 방송되곤 했습니다.
주로 오페라나 콘서트 실황이었지요.
지금처럼 친절한 자막이 없던 시절이라 통 모르겠는 소리에 그저 멍하니 보다가 엎어져 자곤 했었는데... 이후 수요 예술무대의 등장으로 활기를 띄게 되었지요.
미스터빅의 공연실황을 보았던 게 청소년 시절 이시간대 최대의 수확이었습니다.
AM 02~05.
이 시간은 컴퓨터와 인터넷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잠, 만화책, 별로 점철되었었습니다...ㅎㅎㅎ
AM 06.
극악무도한 방송사의 편성에 휘말린 적이 있었지요.
K였나 M이었나.. 기억은 안나지만, 일요일 아침 6시마다 세계명화기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해외의 화가가 그린 명화들 몇개를 주제와 장면 및 구도, 쓰인 물감의 종류와 그 물감을 어떻게 만드는지, 캔버스의 제작이라든가 당시에 썼던 물건, 시대상황 등... 거의 고미술사 수준으로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프로가 시작해버린겁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 이라던가..)
국민학생 시절이었지만, 그때부터 이런거에 필이 꽂혀서 전날 밤에 명화극장 보고 시체처럼 일어나서 미술 다큐 보는...그런 주말을 보냈었습니다. 일찍 일어날려고 알람 시계를 맞춰놨다가 엉뚱하게 부모님이 일어나기도...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애가 그 시간에 일어난다는건 고문입니다...)
정말 재밌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말도없이 끝나버려 아쉬웠습니다.
이후 웬디 베켓 수녀님이 나오는 프로도 있었지만, 전 목소리만 나오는 예전의 진행에 더 익숙해져있던 터라 좀처럼 당기진 않았던...^^;
AM 07.
지금도 환장해(...) 마지 않는 스누피가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 이라는 이름으로 K본부에서 방송을 했었지요.
89~91년도 사이로 기억합니다.
잠 잘 자고 있는 가족들을 타고 넘어 심할 경우에는 밟고. 당당히 리모컨을 눌러 애니메이션의 마력에 푸욱 빠져들었던 시기였지요.
패퍼민트 패티가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 출전했는데, 음악 Tape을 분실하자 우드스톡이 얼굴이 시뻘개져가면서 휘파람을 불었던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후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명목 하에 집으로 오게 된 코리아 헤럴드. 여기서 PEANUTS를 발견하고 당장 스크랩을 하게 됩니다...ㅎㅎㅎ (물론 아버지께 구독연장을 강권하게 되지요)
AM 08.
일출... 사라지는 악의 세력....ㅋㅋㅋㅋ
본래는 인터넷과 컴퓨터 때문에 잠드는 시간이 얼마나 늦춰졌는지를 쓰려고 했었는데...
이런 식의 글이 더 땡겼나봅니다. 쓰고 싶었고요.ㅎㅎ
재방송에다가 예능, 시사 교양에다가 애니메이션 다큐 등.. 여러가지가 얽힌 TV이지만.
뭔가에 눈을 뜨게 된 장면이나 잊혀지지 않는 방송 프로.
누구에게나 그런 건 있을겁니다.
요즘은 케이블로 한창 진격중인데... 역시 그냥 무작정 TV를 켜는 것보다는 구식이더라도 편성표를 봐가면서 체크하고 알람 맞춰서 보는 프로그램이 더 재미가 쏠쏠하네요.^^
# by | 2009/11/04 09:19 | 이어가기 | 트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