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잡담

-만약 곧 세계가 멸망한다면

나 -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망하는거구나.

가족들 - 어째서 망하는건지 어떻게 망할것인지 어딜 가면 조금이라도 덜 망할지 열혈토론.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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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각 - 메즈 예게른 이어가기

 요즘 한창 살까말까 고민중인 책이 두 권 있습니다.

 파울로 코시의 메즈 예게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후자는 거의 사기로 마음 먹었으니까 전자에 대해서 이어가도록 해보겠습니다.


 1915~1916년. 터키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아르메니아인 150만명 대학살에 대해 그린 만화책입니다.

 전쟁이 아닌, 굉장히 잔혹한 사건을 다뤘기 때문에 심한 부분은 격정적이면서도 단순화시키고, 나머지를 차분한 톤으로 그려냈다는 평을 봤지요.

 1차 세계대전에 패한 터키가 러시아와 대립하던 당시. 자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를 도와주는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들을 뿌리채 없애기 위해 일어난 사건이고,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국제적인 입지 차이 때문에 지금도 언론에서 얘기하지는 못하는 일이라고 하네요.

 그 사건들이 참혹하게 그려지고 있다는 후기들을 읽고 생각이 든 건 '내가 이 책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거대하고 지나치게 상세한 정보 앞에서는 오히려 이해 능력은 축소됩니다.
 평소엔 인체 해부도를 봐도 아무렇지 않은데, 복합골절을 입어 드러난 뼈 사진에서는 눈을 감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요.



 공포영화를 봤을 때 무서운 것은 '저게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어떻하지'입니다.
 어지간한 책이나 영화를 볼때 공포물을 피하는 건 그런 이유이지요.^^;

 거의 모든 책이나 음반들에 다른 사람의 평가를 기대지 않고 선택하거나 놓아버렸는데
 이 책을 굳이 망설이고 망설이면서 또 잡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 사건을 그려낸 이 작가가
 제 머리속에 그때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각과 감정들을 제대로 이해시킬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좋은 쪽이 아닌, 정신과 목숨을 빼앗겨버린 사건에 있어서 말이지요.

 음...

 이해의 차원이니 괜찮을 것이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제게 있어서 이해는 상상력으로 - 자신만의 감각으로 가는 첫번째 통로입니다.

 감정이 교류하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읽어도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오히려 다큐쪽을 선호하는 편인데,
 다큐에서 보여지는 정보와 생생한 색감이 오히려 제 감정이 들어갈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파울로 코시의 메즈 예게른은
 끔찍하다
 인간과 지향하는 인간성의 부조화
 가 무엇인지를 저에게 극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이면서
 저 개인으로서는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되있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지적 호기심과 감정적 미방비가 서로 충돌해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책입니다.


 학살의 능동과 수동을 전부 겪은 나라에 살고있는 사람으로서,
 터키와 아르메니아.
 그 사람들이 가지고 나가야 할 기억으로서의 연대표에는 이런 사건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타내질지 궁금합니다.
 양면이 혼재하지만, 대부분이 착하고 스스로의 삶을 지켜나가려는 두 나라에서...


 전에 이승열님이 3집 영상 인터뷰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건가' 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건 결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이다' 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허상을 쫓는 비극적인 운명이 아니라, 원하든 원하지않든 자연이 원하는 조화라는 규칙 아래서 그 손에 놀아나야만 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사람의 성공이란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요 이상의 잔인함 또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봅니다.


 인간은 앞서 말했듯 지나치게 큰 단위의 정보에는 둔감하지요.
 그렇기에 대학살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사람과 그 감각은
 잔인함을 포함한 극적인 한계를 원하지만,
 그런 극성을 오래 버틸 수 없기에 평온함에 파묻히길 원하고
 그 속에서도
 서로간의 관계와 생존에 대해 고뇌하고 소통을 바라는 
 그러한 것이겠지요.

 한 명의 인간을 죽이는 것과
 한 국가 단위의 민족을 학살 하는 것
 어떤 것이 더 큰 무게인지 아닌지는 말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메즈 예게른은
 이것이
 사람의 이야기다.
 사람들의 이야기다.
 라는 생각으로 읽어야 할 작품 같습니다.
 일으키고, 당한. 양쪽의 입장을 저로선 계속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그게 가장 나은 방법 같습니다.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떤 말이 오갈지 궁금하긴 합니다.
 이 민감한 이야기를
 언젠가는 다큐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날까요?


인지도의 격차, 식별자 이어가기


 "대량 복제는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장거리 여행을 일반화 시켰습니다.
 유명한 것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지요."



 Art TV의 클래식 피플이었나.. 거기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를 다루는 중 끝 즈음에 나온 말.
 새벽 1시 넘어서 봤으니까 오늘 맞지요.

 저 말을 뒤집으면 요즘같은 대량복제의 정보화 시대에서는 '유명한 것'과 '유명하지 않은 것' 사이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는 얘기.


 자주 접하는 것을 친숙하게 여기는 이상은 이런 격차는 갈수록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보의 양이 많아질수록 그 정보가 무엇인지를 식별하는 식별자가 중요한데, 
 유명과 무명에 관련을 두지 않고 스스로만의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외부와 접하는 빈도를 줄이고 스스로의 시간과 기준을 늘리는 수 밖에 없겠지요.

 자의적으로 외부 정보의 유입도를 조절하면서 모든 채널의 정보를 균등하게 받아들여야 하니까.


 그게 어렵지... 싶습니다
 편한걸 찾아가는 게 본능이니까.

 다행인 것은 쉽게 질린다는 겁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행이 바뀌는 속도도 빠르지요.^^

 진득한 게 없다는 말은 수심속에 있던 것들이 떠오르는 기회도 빨리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cm도 inch도 척도 아닌 자기만의 길이와 기준.
 그게 복제된 정보들을 대하는 기본 소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들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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